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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현용 2015-05-10 15:37:46, Hit : 461
Subject   김영기 형

50년 전,
제가 살던 시골 ‘신왕부락’은 참으로 가난했습니다.
저는 거의 허물어져 가는 초간삼간에 열 명이 살았어요.
그 초가엔 곧은 기둥 하나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밥 굶는 것은 다반사였어요.

그 가난한 동네 북쪽 끝자락에 영기 형 집이 있었습니다.
논을 메워 집터를 일구고 지은 토담집이었어요.
북쪽으로는 들판이 펼쳐지고
남쪽은 대나무 밭이 가려 매우 추운 집이었습니다.
가까운 곳 벌판에 상여집이 있어 무섭기도 했어요.

그 집에 윤태 양반과 부인, 그리고 영기 형과 영록이가 살았습니다.
참으로 가난하나 참으로 착한 가정이었어요.
가난한 제가 봐도 정말 가난했습니다.
우리 집도 흙냄새 많이 났는데 영기 형 집은 더 했어요.
언젠가 그 방에 한 번 들어갔는데 흙냄새 진동하여 오래 머물기 어려웠습니다.

그들은 착한 내가 봐도 정말 착했어요.
가족 모두는 남 앞에 말도 제대로 못하셨습니다.
항상 부끄러워하시고, 항상 미안해 하셨어요.
제가 한 살 때, 백일해로 가래가 기도를 막아 호흡이 어려울 때
영기 형 어머니께서 당신의 입으로 그 가래를 다 빨아 내셨답니다.

여기 형은 힘이 장사였어요.
동네 힘든 일 도맡아 하셨습니다.
품삯은 넉넉히 받지도 못하신 것 같아요.
여름 밤 뒷동산에서 기마전 할 때
영기 형이 나를 업고 싸우면 천하무적일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윤태 양반이 지병으로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그 부인께서도 얼마 후 돌아가셨어요.
그 가난한 살림, 남편 없이 더욱 힘 드셨나 봅니다.
날 살려주신 분이신데 …

그 후 그 건장하던 영기 형도 돌아가셨습니다.
40도 넘지 않은 나이였던 것 같아요.  
당시 가난은 많은 사람을 일찍 죽게 했습니다.  
혼자 남은 영록이는 부사관이 되어 공수부대에 근무했어요.
그 영록이도 어느 날 군에서 죽었답니다.


지금
그 집터는 흔적 없이 다시 논이 되었습니다.
그 착한 가정이
이 땅에서 사라졌습니다.
이 땅은 착한 그들을 감당할 수 없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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