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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현용 2005-02-10 11:58:18, Hit : 7280
Subject   불완전성. 불확정성, 그리고 절대 진리: 괴델, 하이젠베르그, 그리고 바울
불완전성. 불확정성, 그리고 절대 진리: 괴델, 하이젠베르그, 그리고 바울

신현용(한국교원대학교)

  수number는 수학의 원천적인 대상이다. 크로네커에 의해 하나님의 창조물(선물)로 그 특별한 의의를 부여받은 자연수는 수학적 대상 중에서도 그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자연수에 관하여 엄밀한 수학적 이론의 정립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었다. 자연수에 관한 가장 보편적인 논리 체계는 페아노Peano에 의한 것이다. 이 논리 체계로부터 정수, 유리수, 실수, 복소수 등 모든 수의 이론이 정립된다. 칸토어의 집합론 체계(후에 다소의 수정이 가해지긴 했지만)와 페아노의 자연수 공리 체계 등에 기반을 두고 무모순적consistent(논리 체계 내의 어떠한 주장도 참과 동시에 거짓으로 증명 여기서 말하는 증명은 유한 단계로 이루어진 것만을 뜻한다.
될 수 없다)이고 완전한complete(공리 체계 내의 언어로 서술된 어떠한 주장도 참 또는 거짓으로 증명 가능하다) 공리체계를 이루고자 하는 노력이 있어왔다.
  불완전성 정리the incompleteness theorem는 체코의 수학자 괴델Gödel이 그의 나이 25세(1931년)에 발표한 정리로서 수학계는 물론 철학계 등 전 학문 분야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페아노의 공리 체계를 포함하는 어떤 형식체계가 무모순적 일 때, 그 형식체계 내에는 자연수에 관한 어떤 주장이 존재하여 참이라고도 증명할 수 없고, 거짓이라고도 증명할 수 없는, 그러한 주장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이 불완전성 정리의 주요 내용이다. 즉, 페아노의 공리 체계를 포함하는 어떠한 논리 체계도 무모순적인 동시에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힐버트 등이 무모순적이고 완전한 수학 체계 구현을 위하여 심혈을 기울인 노력이 실현불가능임을 밝힌 것으로서 수학은 그 자체에 극복할 수 없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진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이는 양자 역학에서의 불확정성 원리가 관찰 행위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주장함으로 기존 물리학의 기초를 흔들고, 물리학에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수학의 기존의 절대적 권위를 뒤흔들었고, 수학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인식을 초래하였다 수학이 수학 자체의 근본적인 한계를 증명했다는 사실은 수학의 힘을 증명한다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Gerhard Gentzen은 1936년에 산술arithmetic 체계의 무모순성consistency과 완전성completeness을 초한 귀납법(무한 단계)을 적용하면 증명 가능함을 보였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도 수학 전체의 무모순성을 증명할 수는 없다.
  불완전성 정리는 컴퓨터가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의 두뇌에 이르지 못한다는 논증에 활용되기도 한다. 인간은 신비한 능력으로(논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뜻밖의 사실을 발견하는 게 가능하지만, 컴퓨터는 유한개의 공리로 출발하여 유한 단계에서 논증이 끝나야 하므로 불완전성 정리에 의하여 참과 거짓을 가릴 수 없는 주장이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이성적 사고rational thought로는 궁극적 진리에 도달할 수 없을 수 있다. 궁극적 진리는 증명가능한provable 것이 아닐 수 있다.
  빛 속도에 가까운 엄청난 속도가 가능하고 또 중력도 없는 그러한 특수한 물리계에서나 큰 의미가 있는 특수 상대성 이론이 우리 같은 범부의 일상생활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미세한 양자 세계에서나 의미 있는 양자 역학도 마찬가지로 우리에겐 큰 의미가 없는가?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도 보통의 수학에는 큰 의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불완전성 정리에 의하여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결정 불가능한 문장은 수학적으로 큰 의미가 없는 그러한 문장일까? 그렇지 않다. 연속체 가설에 관한 괴델과 코언의 결과(이 연속체 가설은 기존의 집합론 체계 내에서는 증명도 반증도 할 수 없는 문장이다)는 그러한 기대를 허물어 버린다. 선택 공리나 연속체 가설 같이 수학의 기초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중요한 명제들이 불완전성 정리가 그 존재를 보장하는 그러한 주장일 수 있다는 것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괴델은  불완전성 정리를 증명함에 매우 독창적인 방법을 사용하였다. 특히 “괴델수”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형식화된 체계내의 기본적인 기호, 논리식, 증명마다 하나의 고유번호를 지정한다. 여기서 논리식이라 함은 기호를 규칙에 의해 하나로 묶은 것이다. 일상적인 문장도 논리식의 하나로 보면 되고, 증명은 추론규칙에 따라 이루어지는 논리식의 유한한 열이다. 이러한 각 고유번호를 괴델수라고 한다. 만일 어떤 수가 괴델수이면, 그 괴델수가 어떠한 표현의 괴델수인가를 알 수 있도록 하였다. 따라서 형식체계의 각 기호, 논리식, 증명 등에 하나의 괴델수가 대응되고 그 역도 성립한다. 그렇게 함으로서, 초 수학적 표현이 자연수(괴델수)에 관한 산술적 명제로 바뀔 수 있어서, 초 수학적 표현이 간결해질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한 초 수학적 분석이 용이해진다. 이러한 기법을 사용하는 불완전성 정리의 증명 과정에 페아노의 자연수 공리 체계가 자연스럽게 개입함을 주목해야 한다.
  이제 괴델수를 사용하는 엄밀한 논증은 생략하고 불완전성 정리 증명의 골자를 개략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이 문장은 참임을 증명할 수 없다”라는 문장을 G 라고 하자. 이 문장 G 는 괴델수의 기법으로 자연수에 관한 문장으로 나타낼 수 있다. 이제 페아노의 공리 체계를 포함하는 완전한 형식체계 안에서는, G 는 참 또는 거짓임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어느 경우라도 명제 G 가 참인 동시에 거짓임을 증명한 것이 된다. 따라서 본 형식 체계는 모순적이다. 결국 페아노의 공리 체계를 포함하는 형식체계는 완전한 동시에 무모순적일 수 없다. 한 편, 무모순적인 형식 체계라면 G 는 결정 불가능이다. 즉, G 는 참 또는 거짓을 증명할 수 없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말 할 수 있다. 페아노의 공리 체계를 포함하는 형식 체계가 무모순적이라면, 그 형식 체계 안에는 결정 불가능한 문장이 존재한다.
  얼마 전 미국의 철학자 호프스태터(D. R. Hofstadter)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와 에셔Escher(네델란드의 미술가)의 그림, 그리고 바하의 음악 사이에 깊은 관련성을 발견하여 그 “영원한 황금 몰braid”을 한 권의 책에 소개하여 큰 관심을 모은 적이 있다(이 책은 우리나라에도 번역 소개되었다). 그에 의하면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의 핵심 내용이 에셔의 그림을 통하여 시각적으로 나타나고, 바하의 음악, 특히 “음악의 헌정Musical Offering”을 통하여 청각적으로 표현되어 있다고 하였다.
  또 어떤 철학자는 불완전성 정리가 헤겔과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입장을 지지한다고 주장한다. 즉, 불완전성 정리에 의하면 어떠한 형식 체계도 충분히 강력하면서도 동시에 무모순적이고 완전할 수 없다. 그런데 형식 체계는 인간의 사유 체계의 정확한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어떠한 사유 체계도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어떠한 사유 체계도 제한적일 수 밖에 없던가, 아니면 모순된 주장이나 결정 불가능한 주장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의 예들을 통하여 불완전성 정리가 내포하고 있는 다양한 철학적 의의를 엿볼 수 있다. 여기서 Michael Polanyi의 인격적 지식personal knowledge이라는 개념을 기억하는 것은 가치 있을 것이다. 이 개념은 Polanyi의 인식론적 견해를 나타내는 핵심 개념으로서 객관성과 확실성을 강조한 기존의 인식론이 간과한 암묵적 차원tacit dimension을 강조한 개념이다. 암묵적 차원이란 우리의 지식 속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객관적인 방식으로 실증할 수 없는 그러한 부분을 말한다. 즉 인격적 지식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인격적 지식은 단순히 관찰이나 독서로 획득될 수 있는 지식이 아니고 체득화interiorizing 와 내주indwelling의 과정을 거치면서 습득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어떤 지식의 발견 과정은 물론 남을 설득하는 과정도 새롭게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발견이란 매우 미묘하여 그 논리를 형식화한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음을 지적한다. 이 때 암묵적 추리tacit inference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결론적으로 Polanyi의 인격적 지식이라는 개념에서는 형식화, 객관화 등 기존의 틀로는 접근할 수 없는 중요한 면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론도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의 내용이나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 정리의 내용과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과일 장수는 과일을 예쁘게 쌓아 놓고 많이 파는 일에 집중하지, 과일 쌓기에 관련된 수학 문제(Kepler's conjecture)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나 수학자는 고민한다. 그 방법이 최적일까라고. 몇 백년 후 어느 수학자가 그 문제를 풀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증명에 많은 시간의 컴퓨터 계산이 활용되었다하여 여러 수학자가 그의 증명을 인정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앤드류 와일즈의 페르마 마지막 정리 증명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라면 그 수학자의 공쌓기 문제의 증명은 전화번호부’라며 폄하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디도서를 읽고 은혜를 받는다. 그러나 수학자는 ‘Cretan paradox(디도서 1 장 12-13절)’에 걸려 한 치 앞을 나가지 못한다. 그레다인의 말이 참인가 거짓인가?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된다. 괴델이 미국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미국 헌법 준수를 서약해야 하는데, 그 당대 최고의 논리학자는 그 헌법이 무시무시한 독재자의 길을 열어 놓고 있음을 엄밀한 논증으로 밝히고 헌법 준수를 거절한다 아인슈타인의 설득으로 시민이 될 수 있었다.
  진화론은 아름다운 과학이다. 최고의 과학 이론 중의 하나이다. 생물의 진화만이 아니라 사화 각 영역에도 적용될 수 있는 이론이다. ‘창조론’에서 ‘론’자는 빼야 한다. 하나님의 우주 만물 창조하심은 이론이나 학설이 아니다. 하나님의 선포요 믿음의 대상이다. 결코 과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전혀 과학적이 아니다. 비과학이 아니고 초과학이다. ‘창조 과학’ 이란 것도 자기모순적인 용어다. 과학적이 아닌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게 가능할까?
  누가복음(10:21)은 귀한 진리들이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겨지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난바 됨을 감사한다. 어느 수학적 명제는 진리일 수 없다. 어떠한 물리학 이론도 그렇다. 수학자나 과학자는 이론 전개상 유용한 가정을 한다. 양자 역학에서의 입자 가설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수학과 과학은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한 접근 방식이다. 양자 역학에서 빛을 설명하는 그 아름다운 이론의 밑바닥에서는 왜(why)라는 질문이 가능하지 않다. 단지 그렇게 설명할 뿐이다. 왜 상대성이론과 양자 역학은 양립하기 어려운가? 만물의 근원을 크기가 없는 이상적인 입자로 보는 전제에서 문제가 야기되나? 초끈이론에서는 만물의 근원을 끈으로 보고 그 끈은 유한의 길이를 가정하므로 양자 역학과 일반 상대성 이론의 충돌은 해결한다는데 그 초끈이론은 궁극적 이론이며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인가?  
  이제 이러한 문제와 관련하여 바울은 성경에서 무어라 말하는지 살펴보자. 먼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인간 이성human reasoning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그리스적 관점을 비판한다. 물론, 다른 편지에서는 율법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유대적 자세를 비판한다. 그는 인간 이성과 율법을 뛰어 넘는 복음, 즉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증거한다.
  “말의 지혜philosophy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 하셨도다(고전1: 17-21). 바울은 사람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고전2:9)”하는 것을 보게 하고 듣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고 한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고전2:10)”한다 하면서 하나님의 감추어진 지혜를 자랑한다. 물론, 바울은 인간의 지혜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무식한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하리요(고전14:15-16).” 그러나 바울은 분명히 사람의 감각과 지혜를 넘는 부분을 강조한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4:18).” 율법과 은혜(the Law vs the Grace), 이론과 진리(the Law vs the Truth), 그리고 모세와 예수(Moses vs Jesus). 율법의 관점에서는 일곱 귀신들린 마리아에게는 희망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 안에는 절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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